소규모 유산 상속 대상이 예금뿐일 때도 갈등이 생기는 이유
소액 상속에도 분쟁이 발생하는 이유
사람들은 흔히 상속 분쟁이란 수십억 원대의 부동산이나 주식, 대규모 자산에서나 일어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에서는 단 몇백만 원 수준의 예금 상속에서도 형제자매 간 갈등이 발생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특히 고인이 남긴 재산이 은행 예금이 전부일 경우, 사망 직후 누군가가 이를 단독으로 인출하거나 이체하면서 불신이 시작된다. ‘이 정도는 내가 돌봤으니 당연히 받아야 한다’는 식의 정서적 판단이나 ‘작은 금액쯤은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태도는 곧 분쟁의 도화선이 된다. 상속 규모가 작다고 분쟁의 강도까지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액일수록 공식적인 절차를 무시하는 경향이 짙고, 남은 가족의 감정 상처가 커질 수 있다. 이런 갈등은 금전 그 자체보다는 ‘공정성’과 ‘존중받지 못한 감정’에 더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상속 재산 분할에 필요한 서류나 유언이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분쟁이 더욱 심화된다. 가족 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적으로 예금을 처분하면, 추후 법적 절차에서 부당이득 반환이나 유류분 청구 소송으로 이어지는 일이 잦다. 특히 연로한 부모를 병간호했던 자녀가 스스로를 ‘정당한 상속 대상’으로 인식하고 절차를 무시한 채 돈을 건드릴 경우, 다른 가족들은 ‘몰래 빼돌렸다’고 여겨 강한 반발심을 가지게 된다. 이는 결국 오랜 법적 다툼이나 관계 단절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한순간의 실수가 형제자매 간 회복할 수 없는 틈을 만들게 된다.
단독 인출과 이체는 명백한 분쟁의 증거가 된다
고인의 사망 직후, 장례나 정리 절차로 가족들이 정신없는 틈을 타 상속인의 한 명이 은행에서 예금을 전부 인출하거나 자신의 계좌로 이체하는 일이 실제로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들은 보통 생전에 고인의 간병을 맡았거나 경제적으로 지원했다는 정서적 근거를 내세우며 “이 돈은 원래 내 몫”이라고 주장하지만, 법적으로 이는 공동 상속재산을 자의적으로 처분한 불법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특히 금융기관을 통한 거래는 모두 기록이 남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 다른 상속인이 이를 확인하고 문제를 제기하면 법적으로도 상당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실제 사례로, C씨는 부친이 사망한 직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예금 1,200만 원 전액을 ATM에서 인출했다. 그는 간병을 전담했고 장례비용도 본인이 부담했다고 주장했으나, 지출에 대한 증빙이 없었고, 가족들에게 사전 동의도 구하지 않았다. 결국 동생들이 ‘유산을 횡령했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C씨에게 상속재산 분할 전 임의 처분금 반환 판결을 내렸다. 특히 예금 상속은 부동산과 달리 바로 현금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단독 행위는 법적으로 ‘부당이득’이 될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 해당 금액이 전체 상속재산의 대부분일 경우, 타 상속인의 법정지분이나 유류분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동의 없는 수령’과 기여도 논쟁이 낳는 감정적 골
가장 많은 갈등은 상속인 중 누군가가 다른 이들의 동의 없이 예금을 수령했을 때 발생한다. 특히 고인과 가까이 지냈거나 함께 거주한 자녀가 그간의 정성과 수고를 이유로 “이 돈은 내가 써야 마땅하다”고 판단해 임의로 사용하면, 다른 형제자매들은 그 자체를 ‘배신’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정서적 정당성과 법적 정당성이 충돌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법적으로 상속재산은 모든 상속인이 협의하여 분할해야 하며, 아무리 간병을 했더라도 정해진 법적 절차 없이 수령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기여도는 법원에서 별도로 판단받는 것이며, 예금을 먼저 가져간다고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사례로 D씨는 모친과 동거하며 병간호를 해왔고, 사망 직후 모친 명의 예금 800만 원을 전부 인출했다. 그는 “살아 계실 때부터 엄마가 다 내게 주겠다고 했다”고 주장했으나, 유언장은 존재하지 않았고, 녹취도 없었다. 반면 동생들은 생전 모친이 ‘나눠 쓰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반박했고, 결국 소송까지 이어졌다. 법원은 D씨가 모친을 돌본 정성은 인정하되, 예금 전액을 독점할 근거는 없다고 보았고, 일부 기여분을 제외한 나머지를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이처럼 상속 기여도는 분쟁의 중심이 되기 쉬우며, 감정적인 상처와 ‘불공정한 처분’이라는 인식이 더해져 형제자매 간 깊은 골을 만든다.
갈등 예방을 위한 제도적 장치와 심리적 노력
상속 갈등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고인의 생전 준비와 남은 가족들의 절차 준수가 매우 중요하다. 유언장은 자필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공증이나 녹취 등 법적 효력이 인정되는 형태로 남겨야 추후 분쟁에서 방어가 가능하다. 또한 고령의 부모가 사망에 가까워질 경우, 예금 관리 내역과 장례비용 지출 등을 문서로 투명하게 공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상속재산 분할 협의서를 상속인 전원이 작성하고 은행에 제출해 법적 절차를 따르는 것이 기본 중 기본이다. 금융기관 역시 일정 금액 이상은 상속인 동의 없이는 인출이 불가능하도록 관리 체계를 강화하고 있으므로, 절차에 따라 진행하면 불필요한 갈등을 막을 수 있다.
더 나아가 최근에는 ‘사전 상속 협약 제도’나 ‘가족신탁’ 등을 통해 가족 간 유산 분배를 미리 계획하는 추세도 증가하고 있다. 고령자의 재산을 생전부터 투명하게 관리하며, 본인의 의사를 공식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장치들이 법적으로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도적 장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가족 간의 대화와 신뢰다. ‘유산을 나누는 일’은 단순히 돈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남은 사람들 간의 관계와 기억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기도 하다. 상속은 유산이 아니라 가족을 남기는 일이다. 소액의 예금 상속일지라도, 신중하고 정직하게 나누는 것이야말로 고인을 향한 마지막 예우이자 남은 가족을 위한 지혜로운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