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상속인이 있는 경우, 소액 유산도 후견인이 필요한가?
미성년 상속인, 예상치 못한 ‘절차의 복병’
상속은 단순히 고인의 유산을 나누는 과정이 아니다. 남겨진 가족들이 법적으로, 감정적으로, 때로는 경제적으로 정리해야 할 복잡한 과업이다. 그런데 상속인 중에 미성년자가 포함되어 있을 경우, 그 복잡성은 한층 더 커진다. 부모가 사망하면서 자녀가 상속인이 되는 상황은 매우 일반적이지만, 실제로는 ‘미성년자 상속’은 별도의 법적 절차와 제한 사항이 다수 존재하는 특수한 케이스다.
특히 많은 유족들이 오해하는 지점은 이렇다. “상속재산이 소액이라면, 굳이 별도의 법적 절차 없이도 그냥 가족끼리 나눠 갖거나, 미성년자 몫은 부모가 대신 관리하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민법은 미성년자의 재산 행위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고, 상속은 단순히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의무의 법률행위이므로 보호가 필수다.
즉, 상속인 중 미성년자가 있다면 아무리 소액의 유산이라도 법정대리인(보통은 부모 중 생존자)의 동의가 필요하고, 경우에 따라 가정법원에 후견인 선임이나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할 수도 있다. 이런 현실은 유족들이 상속 진행 과정에서 가장 크게 부딪히는 문제 중 하나다.
후견인의 역할과 가정법원의 개입 기준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가정법원이 개입하고, 후견인이 필수가 되는 것일까? 미성년자는 독립적으로 법률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상속재산을 분할하거나 처분하는 과정에서 법정대리인의 역할이 반드시 요구된다. 예를 들어 미성년자가 공동상속인으로서 상속분을 포기하거나 협의분할에 참여하는 경우, 단순한 부모의 서명으로는 법적 효력을 갖기 어렵고, 가정법원의 허가가 필요하다.
특히 부모가 사망하고, 남은 생존 배우자가 자녀의 상속 지분까지 통합해서 정리하려고 할 경우 — 예를 들어 예금 인출, 부동산 매각 등을 하려는 경우 —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어 후견인 선임이 요구될 수 있다. 이때는 생존 배우자도 더 이상 ‘법정대리인’이 아닌 ‘이해관계 당사자’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상속재산의 가치는 중요하지 않다. 소액 유산이라도 미성년자의 지분이 포함되어 있다면 원칙적으로 동일한 절차가 적용된다. 즉 “금액이 작으니까 예외로 인정되겠지”라는 기대는 법적으로 통하지 않는다. 법원의 관점에서는 금액이 아니라 ‘미성년자의 권익 보호 여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가정법원에 후견인 선임을 신청할 경우, 통상적으로 1~2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며, 관련 서류와 비용, 가사조사 절차 등을 동반한다. 이로 인해 단순히 부모 명의의 소액 통장을 정리하려는 목적만으로도, 의외의 시간과 행정적 부담이 유족에게 전가될 수 있다.
실제 사례: “아이 몫도 처리하려다 법원까지 가게 될 줄은 몰랐어요”
한 사례를 살펴보자. B씨는 남편이 급작스럽게 사망하면서, 남편 명의의 예금 계좌(잔액 약 700만 원)를 정리하고자 했다. 공동상속인은 B씨 본인과 초등학생 자녀 두 명. 처음에는 단순한 은행 상속 절차로 해결하려 했지만, 은행 측에서는 “미성년자 상속분이 포함되어 있어 협의분할을 하려면 가정법원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안내했다. B씨는 당황했고, 그 뒤 한 달 반 가까이 가정법원에 후견인 선임과 협의분할 동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또 다른 사례로는, 고인의 통장에 남은 잔액이 200만 원 정도밖에 없었지만, 상속인 중 중학생 자녀가 있었던 경우다. 이 경우에도 은행은 일률적으로 미성년자의 지분에 대한 법적 동의서류를 요구했고, 유족은 상속을 포기할지 고민하다 결국 절차를 포기하기도 했다.
이처럼 미성년자가 상속인으로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상속의 절차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간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예금 하나, 보험 하나를 정리하려다 생각지도 못한 법적 절차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은 종종 유족들에게 “미성년자 상속은 너무 어렵다”, “차라리 상속을 포기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지만, 이는 곧 미성년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사전에 정확한 제도 이해와 절차 설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후견인 절차를 피하는 방법과 실질적인 대처 방안
그렇다면 미성년자가 상속인이 될 경우, 가정법원 절차 없이 상속을 보다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법률상 완전히 피할 수는 없지만, 사전에 유연하게 대처하면 일부 절차를 생략하거나 간소화할 수 있는 여지는 분명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단순승인 방식이 아닌 ‘지분 정리 없이 각자 명의로 직접 상속 신청’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인의 계좌를 상속인 각자가 법정지분대로 개별 인출하거나 이전받을 경우, 협의분할이 아니므로 가정법원의 허가 없이도 진행이 가능한 경우가 있다. 단, 이 방식이 가능한지는 은행의 내부 규정에 따라 다르므로 반드시 사전에 문의해야 한다.
또한 상속재산이 일정 금액 이하일 경우 ‘소규모 상속’ 절차를 이용하면, 미성년자의 법정대리인이 동의하는 조건으로 일부 생략 가능한 항목이 존재한다. 예컨대 일부 금융기관에서는 1천만 원 이하의 상속재산에 대해서는 단순 서류 확인만으로 미성년자의 지분을 포함해 처리해주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는 은행마다 다르며, ‘협의분할’ 없이 법정상속분 그대로 진행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유족이 미성년 상속인의 존재와 법적 지위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단순한 ‘가족 관계’가 아닌 법적 절차상 당사자로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가정법원에 후견인 선임이나 동의 신청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가족관계증명서, ▲기본증명서, ▲상속재산 내역서, ▲후견인 후보자의 동의서 등이 필요하며, 경우에 따라 재산 목록과 사용계획서를 요구받기도 한다.
이런 절차가 부담된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전 유언장을 작성하거나, 신탁제도를 활용해 미성년자의 상속 재산을 사전에 설계해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가족 내 미성년자가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상속 절차의 복잡성을 유발하므로, ‘상속은 어른들의 문제’라는 기존의 인식을 넘어, 미성년자의 권리도 균형 있게 보호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